이제는 정당이 메시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정당을 만든다. 유튜브·틱톡·텔레그램을 타고 도는 15~60초짜리 분노·유머·짧은 슬로건이 먼저 사람을 모은다. 그다음 정당들이 손을 잡거나 갈라선다. 예전엔 지휘자가 먼저 무대에 올라 합창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멜로디가 먼저 히트하고 지휘자와 단원이 나중에 따라 붙는다. 이 순서의 뒤집힘이 오늘 유럽의 극우 결속을 설명한다.

정치 동원 방식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조직→회원→메시지’ 경로가 ‘메시지→커뮤니티→조직’으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좋아요’ ‘공유’ ‘구독’ 등 저강도 참여가 느슨한 결속을 형성하고, 선거 시기에는 이 결속이 표심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관측된다. 스캔들이 발생해도 확산 동력이 쉽게 약화하지 않으며, 지도자가 교체돼도 포맷화된 밈과 콘텐츠가 플랫폼에 남아 재생산되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결속을 견인하는 장치로 ‘이슈 허브’가 거론된다. 유럽 극우 세력은 단일 교리에 의존하기보다 생활경제·치안·규범·주권 등 이질적 불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구호를 앞세우는 경향이 확인된다. 예컨대 ‘환경 엘리트 vs 생활경제’(농민·연료·난방비), ‘치안·질서 vs 무능한 엘리트’(이민·범죄), ‘우리 규범 vs 브뤼셀 규제’(주권·규제)와 같이 단순하고 강한 대비를 활용한다. 특정 이슈가 부상하면 각국 인플루언서와 채널이 동일한 슬로건·수치·시각 자료를 현지화해 동시 배포하는 사례도 잇따른다. 정치 협상보다 플랫폼 기반 콘텐츠의 제작·편집·유통이 여론 형성에 반영되는 속도가 앞선다는 평가다.

연대의 방식은 강령 통일이 아니라 브랜드 관리에 가깝다. 무엇을 함께 말할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누구와 사진을 찍지 않을지, 어떤 사건엔 침묵할지가 더 중요하다. ‘극단성의 경계’는 이념 토론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위험 규정으로 집행된다. 그래서 한 번 갈라져도 같은 이슈 허브가 뜨면 다시 금세 붙는다. 이 연합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찍고 떼는 브랜드 스티커에 가깝다. 표면이 바뀌면 새 스티커를 꺼내 붙이면 그만이다.

이 결속을 실제로 움직이는 관절은 인플루언서와 채널 운영자 같은 중간 엘리트다. 공개 플랫폼에서 의제를 띄우고, 폐쇄형 메신저에서 행동을 조직해, 오프라인 시위로 연결한다. 전통 언론의 문지기가 약해지자, 이들이 문구를 다듬고 밈을 고르고, 브랜드의 레드라인을 정하는 수문장이 됐다. 영향력은 웬만한 당 지도부 못지않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이 작동한다. 플랫폼 추천·광고 시스템은 강한 감정에 보상한다. 간단하고 자극적인 설명, 맞서 싸우는 구도, 내부 농담은 오래 살아남는다. 이 ‘분노 프리미엄’이 조회수와 후원을 만들고, 그 수익이 다시 제작을 늘린다. 밈은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사업모델이다. 그래서 몇 번의 팩트체크나 계정 제재만으로는 회로가 멈추지 않는다. 물 한 바가지 끼얹는다고 기계가 서지 않듯, 엔진을 멈추려면 연료 라인을 손봐야 한다.

이 논의가 국제정치의 핵심인 이유도 분명하다. 에너지 전환·무역 규제·이민 협력 같은 합의는 이익이 장기·분산으로 돌아오고 비용은 단기·집중으로 찍힌다. 이 시간차를 ‘보이는 보호’로 메우지 못하면, 플랫폼 회로에서 국경을 넘는 결속이 더 빨리 조직된다. 외교의 내구성은 장문의 합의문보다 우리 집 고지서 한 줄에서 판가름난다. 주권은 더 이상 국경선의 선명함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보이게, 누구에게 귀속되게 보호를 제공하느냐. 이 세 가지가 새로운 주권의 단위다.

결론은 분명하다. 유럽의 극우는 ‘밈 연합’으로 결속한다. 해법은 무엇을 보여줄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쪽 정보가 과열되면 잠깐 브레이크를 걸고, 어려운 정책은 고지서·지도로 쉽게 보여 주고, 팀은 역할을 나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운영이 바뀌면 프레임이 바뀌고, 프레임이 바뀌면 그 연합의 수익률은 떨어진다. 한국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플랫폼 규칙의 투명성을 높이고 ‘고지서 라벨링’ 같은 보이는 보호를 표준화하면 분노의 수익률은 낮아지고 중도 다수의 신뢰는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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