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배가 고픈 여우가 길을 가다 포도밭을 발견하지만, 포도가 너무 높은 곳에 열려 있어 따 먹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어"라고 불평하며 돌아선다. 포도가 정말 시어서 먹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다. 여우는 자신이 포도를 먹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포도를 나쁘게 평가한 것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관세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두 대통령이 처음 만났을 때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협상 방식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단순한 접근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오랜 동맹국이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협력해 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타결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관세협상은 관세, 투자, 불법체류 문제가 얽히며 복잡해졌다. 관세와 투자는 무역적자와 연계되어 한미 간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불법체류 문제는 미국과 저소득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주제다. 한국과 같이 미국에 투자하는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불법체류자로 체포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를 단순히 문화 차이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협상의 기본은 왜곡 없이 서로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서로를 정확히 이해할 때 상호 이익이 되는 협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불법체류 문제를 제기한 것을 보면, 아직도 한국을 원조 받던 작은 나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첨단 산업뿐만 아니라 철강,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의 강국이라는 현실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은 자국의 군함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적 저항이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인식과 현실의 차이가 클 때, 행동은 거칠어지기 쉽다.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요구를 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 덕분에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보며, 한국이 미국의 ATM 역할을 해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현재 위상과 역량을 간과한 시각이다. 우리도 미국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해 온 오랜 우방이며, 미래에도 변함없이 협력해야 할 동맹국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관세협상은 한국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서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며 미래를 함께할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한미 관계를 견고하게 묶을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신포도를 만드는 여우가 되지 않는 한국과 미국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