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의 공정성, 동기부여 촉진 보상체계, 개인·집단성과급과 같은 개념은 최근의 평가·보상 시스템 설계 과정에서 당연히 바람직한 '정답'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개인 또는 조직 차원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임금체계를 구축하면서, 자연스레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선진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실무 컨설턴트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2024년 6월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서 전체 사업장의 과반인 52.6%가 여전히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이론적으로는 아웃풋 극대화를 위한 성과급제 도입을 고려하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결국 도입을 포기하게 된다.
이에 아래에서는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제가 무조건 구시대적 제도이자 타파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성과 중심 보상체계를 꿈꾸는 중소기업이 과도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설계 방안을 논하고자 한다.
■ [레시피 1] 잘 만든 호봉테이블 하나, 어설픈 열 성과급 안 부럽다
성과급제는 이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실무에 옮기자면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애초에 소규모 기업은 직무분석은커녕 애초에 확실한 직제 분리에 따라 일한다고 보장하기도 어렵다. 대다수 기업은 인사팀은 고사하고 HR 전담자조차 온전히 1명을 두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아,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있어 보여도 인사팀장이 유일한 팀원이자 총무 업무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성과급제를 구축해도, 그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를 시행할 수가 없으니 오히려 불공정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업무 난이도나 성과의 고저를 측정할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유동적이고 여러 변수에 따라 계속 바뀌어야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이를 정기적으로 진단 및 개선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호봉 테이블을 만들어서, 급여 상승의 예측성과 그로 인한 최소한의 기대에 근거한 또 다른 의미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 이때 호봉표는 단순히 연차만 반영하기보다는, 직급이나 직종 등 기준을 분리하여 최소한의 직무군을 잡고 그 사이의 보상 격차를 반영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때문에 호봉제 회사에서는 '승급'의 의미가 매우 중요해진다. 일직선상에서 일방향으로 움직이는 임금 수준을 역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바로 승급에 따른 직급수당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최소 승급 연차를 두되, 일 잘 하는 직원은 빠르게 승진시켜 호봉표 밖에서의 별도 수당을 지급한다면 금전적 동기부여에다가 직급 그 자체에 따른 비금전적 동기부여까지도 취할 수 있게 된다.
■ [레시피 2] 성과급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여기에, 많은 호봉제 중소기업에서 부분적이나마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의 성과급이란 대기업에서의 개념처럼 매 연말 개인에 대한 세세한 평가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팀 단위 인센티브 또는 조직 전체 실적에 따른 일종의 PS(profit sharing)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회사 내 여러 아이템 중에 지난 기간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아이템을 찾고, 그 아이템과 연관된 주요 팀이나 개인을 식별하여 그들에게 PS 지급 비율을 차등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통상 이런 식의 인센티브는 기본급의 몇 퍼센트를 지급하게 되는데, 그 비율을 확실히 높이는 방법으로 '열심히 그리고 잘한' 사람과 부서를 치하하는 것이다.
특히 많은 기업에서 외형적으로 선진적이라는 단순한 믿음만 가지고,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개인별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게 되는데 이는 굉장히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애초에 이런 회사는 제대로 된 평가제도를 운영한 경험도 없기에, 갑자기 하루아침에 공정하고 이견 없는 평가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는, 성과급이라는 개념을 너무 어렵게만 접근하지 말고 일종의 포상제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전부터 많은 군대식 전통 기업들도 우수자에 대한 포상으로 상장과 함께 상품권을 나눠주곤 했는데, 사실 이런 방식은 근본적으로 성과급제와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급 대상은 일을 잘 한 사람일 수도 있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더라도 타인의 모범이 될 만한 직원을 치하하는 것은 회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 [레시피 3] 정말로 우리 회사는 성과급제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는가?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수천만 원의 돈을 들여 제대로 된 임금체계를 구축하고, 인사팀과 중간관리자가 충분히 교육훈련을 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장애물은 여전히 남는다. 바로, “애초에 회사에 성과급제가 정말 필요한가?” 그리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이 그것이다.
많은 중소기업은 구시대적 직제를 몇십 년째 운영하면서도 충분히 성과가 나오고 생존해 오고 있다. 이는 반드시 치밀하고, 고도로 분업화되며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명시적인 현대적 조직만이 답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각각의 생존 전략이 암묵지로 치환되어 노하우가 된 상황이라면, 현행 시스템을 건드리는 게 오히려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기에, 조직 구성원의 변화관리와 저항이라는 문제도 정말 중요하다. 제도가 바뀐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이를 나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식을 거부하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고성과자의 능력이 정말로 뛰어나다고 해서, 고성과자만 확실히 대우하고 나머지는 속된 말로 “버리는 패”가 된다면 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전제로 돌아가, 고성과자에 대한 차등 보상의 필요성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한다면, 이제 막 기업의 틀을 잡아나가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당장 성과급제를 도입하기보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서비스나 재화의 생산 프로세스를 재점검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변화의 기운이 점차 스며들고 어느 순간 구성원들이 준비된 시점이 올 때, 비로소 경영자가 의도하는 동기부여형 성과급제 체제가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