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정책이 예상을 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인텔을 비롯한 자국의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지분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더 나아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분 인수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진보주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샌더스 상원의원까지 지지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으로만 간주할 수 없다.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우리에게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미국의 태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반도체는 원유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원유가 동력을 만들어내는 핵심 자원이라면, 반도체는 첨단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자원이다. 반도체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기계와 같은 제품의 생산도 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첨단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도 제동이 걸린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제품의 수출을 제한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경제정책을 넘어 국제 안보 전략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원유 확보를 위해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 안보 전략을 추진해왔다. 1974년에 미국은 사우디와 페트로달러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고 안정적 원유 공급뿐만 아니라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을 확보했다. 미국이 안보와 원유를 교환한 대표적 정책이다.

이제 미국은 반도체 역시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원유와 달리, 반도체는 생산에 있어 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는 보조금 정책으로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유입시켜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는 반도체 생산의 위치뿐만 아니라 기술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반도체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분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생산 강국이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약 1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반도체가 한반도에서만 생산될 수 있다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정책은 지금과는 크게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는 미국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가 아닌 한국의 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은 경제적 이익이 중요한 가치였던 평화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안보와 경제가 긴밀히 얽혀 있다. 즉 경제 안보의 시대이다. 우리의 산업과 기업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반추해 보자. 핵심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선을 넘는 경쟁을 시도하는 국제사회를 보자. 한미 정상이 만나는 지금, 우리는 현재의 이익을 넘어 미래를 지키는 가치를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최영준 교수 (경희대 무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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