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 사람들이 굳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도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간 거래나 거래소 간 자금 이동에 많이 쓰이지만, 생활 속 실사용처가 더 다양해져야 진정한 확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근 만난 한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조건으로 실효성, 즉 '명확한 사용처 확보'를 꼽았다. 스테이블코인이 본질적으로 '화폐'인 만큼, 기술력이나 발행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걸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디지털 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 판이 짜이고 있다. 이제 관건은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고 적용할 것인가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금 등 가치가 일정한 자산에 연동해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이다. 예를 들면 1달러가 곧 1코인인 셈이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 송금, 디파이(DeFi), 거래소 거래의 기준통화 역할을 해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것은 미국이 이미 달러화와 국채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USDT(테더)와 USDC는 시장에서 거의 99%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상원은 지난달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를 통과시켰다.
이에 한국도 하루빨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구축해 글로벌 경쟁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고 국부 유출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업계는 이 과정에서 제도와 기술, 보안 등 핵심 요소들을 철저히 검토해야 실질적인 경쟁력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서둘러 구축한 반쪽짜리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는 만큼, 우려 사항을 신중히 따져보고 법의 사각지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효성 이외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발행 주체와 안정성, 보안성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발행처가 충분한 준비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대규모 현금화 수요가 발생하면 금융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 역시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대체재라는 점에서 비은행 기관이 발행할 때 통화정책 유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최소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기자본 요건을 10억원 이상으로 규정하는 디지털자산혁신법 발의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10억원도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은 해킹 위험성이 높아 보안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영사의 내부 통제 역시 확실해야 한다. 결국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개별 금융사가 발행하기보다는 은행과 핀테크 업체를 비롯한 비(非)은행의 합종연횡이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디지털 G2'로 도약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된 가운데, 지금 필요한 건 확실한 전략이다. 정부가 제도화를 추진하고 업계가 기술적 실험을 위해 손잡는 지금이야말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뚜렷하게 정립할 기회다. 기술과 신뢰, 활용성이 담보됐을 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지털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굿모닝경제 권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