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의 금융지주 회장 인사 압박 악순환 고리 끊어야
감독자가 시장 플레이어 되선 안돼
경영 독립성, 자율성 제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해야
윤석열 전 정권의 복심으로 불렸던 이복현 금감원장이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5일 퇴임한다.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등 제도화 박차, 대규모 PF 부실 사태의 신속한 정리 등 치적이 적지않다. 퇴임을 앞두고 본인이 이룩한 성과를 알리는 릴레이 발표를 담당 임원들이 돌아가며 했다.
하지만 이복현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 인사에 개입하는 관치의 그림자다. 특히 정권이 바뀔때마다 금융당국의 직간접적 압박에 의해 연임에 실패하거나 사임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한국 주식시장의 디스카운트 해소와 레벨 업을 위해서 이들 금융지주사 경영의 투명성, 자율성을 제고함으로서 기업 전략의 연속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요소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요소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월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시 인프라 개선 관련 열린 토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https://cdn.goodkyung.com/news/photo/202506/265173_233846_5837.png)
후계 승계 구도의 안정화, 제도화 등 아무리 기업지배구조를 선진화하더라도 정권 교체기마다 지주사 경영권이 흔들린다면 기업가치 제고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신임 실세 금융감독 수장이 금융사 제재를 도구로 내세워 CEO의 자진 사임을 유도하는 과거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우리 금융산업의 성장을 도모하기 힘들다. 대표적 예가 우리은행의 수백억원 불법 부당대출 의혹을 놓고 지난해 5월부터 이복현이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이어 지난해 말에는 우리금융 본사, 임 회장, 조병규 당시 우리은행장의 집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단행됐다.
금융사에 불법대출 등 사건이 발생하면 금감원의 특별 조사를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규정에 따라 금융사 및 CEO에 제재를 하는 절차를 따르면 된다. 형사적 책임도 있다면 검찰 조사와 기소를 거쳐 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의혹'만으로 당국이 지상 방송을 하며 금융사 경영진을 옥죄는 것은 금융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해당 기업의 주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복현은 불법 대출 의혹이 언론에 불거지자 우리금융그룹을 향해 기자들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하고, KBS에 나와 '우리금융 경영진이 책임져야한다'며 임종룡의 퇴진을 사실상 종용했다.
임종룡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국 금융산업, 특히 금융지주사는 수천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는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조사나 재판으로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칼날을 휘두르면 한국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신뢰도가 추락해 그 피해는 주주, 더 나아가 한국의 주식시장이 된다.
지난해 임종룡에 대한 '구두 공격'을 보며 금감원장 이복현이 아니라 '검사' 이복현이 떠올랐다. 금감원장이 됐지만 수십년의 '검사' 이복현의 때를 벗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이복현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이른바 '윤석열 사단' 멤버다. 금감원장 취임때부터 윤석열의 복심으로 불리며 상급 부처 수장인 금융위원장을 건너 뛰고 직접 용산과 소통하며 금융감독은 물론 정책을 총괄지휘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시기 검찰 출입기자로 정재계 고위 인사의 뇌물 혐의 등 많은 특수부 배당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대형 사건을 맡는 특수부 부장 검사를 지휘하는 검사)는 사건 수사가 시작되면 매일 출입기자 수십명을 방으로 불러 수사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는 다음날 'A가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등의 제목의 1면 톱 기사가 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수수 의혹 수사 당시 언론 제목으로 '논두렁 시계'가 나온 것도 이같은 식이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하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위 인사에 대한 '좌표 찍기'와 '모욕 주기'를 일상화했다. 이후 재판에서 무죄가 나도 언론은 관심도 없다.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의 생사 여탈권을 갖고 있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감독기구의 수장이다. 금융시장과 시스템은 복잡하고 예민하다. 감독 수장의 한마디에 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고, 주가가 출렁일 수 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 단순 양분해서 볼 경우 진실을 놓치기 십상이다. 불법이 최종 확정되면 금융질서와 소비자보호를 위해 추상같은 제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혹만으로 당국이 나서 특정 금융사와 CEO에 여론의 주홍글씨를 새긴다면 금융시장의 자율성이 훼손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당시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우리금융그룹은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해 경영의 연속성이 부재할 경우에 기업가치가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업 대출의 명가로 불렸던 우리금융그룹은 민영화 과정에서 몸집을 줄이기 위해 증권사, 보험사 등 주요 계열사를 매각했고 이후 계열사 시너지가 없어지면서 신한금융그룹 등 경쟁사에 비해 성장세가 확연히 뒤쳐졌다.
정부 소유 금융지주회사로 정권이 바뀔때마다 전리품 마냥 신 정부 실세를 등에 업은 사람들이 CEO 자리를 꿰차는 일이 빈번했고, 여기다 한일, 상업은행 파벌간 갈등까지 노정되며 지배구조는 더욱 흔들렸다. 지난해 불법 대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들 계파 싸움에서 비롯됐다는 후문이다. 이제 우리금융그룹은 이같은 과거를 뒤로 하고 증권사 인수에 이어 ABL, 동양생명 인수 등을 통해 그룹 시너지를 창출하며 재도약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금융감독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금융정책과 감독을 동시에 맡고있는 금융위원회를 없애고,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원에 통합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금융위원회 산하에서 감독 실무를 맡고있는 현재의 금융감독원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금융감독기구로 재탄생하게 된다. 차기 금융감독 수장은 본연의 감독과 소비자보호에 만전을 기해야지, 금융지주 CEO 인사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이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감독자는 내부통제, 지배구조 모범 규준 등 규정을 가이드해야지 경영이 맘에 안든다고 시장 플레이어가 되려 해서는 안된다.
정권 교체기마다 금융지주 CEO들이 석연치 않게 교체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중장기적인 경영 전략 수립이나 혁신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국 금융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각인시킬 수 있고,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드 해소에 다가설 수 있다.
굿모닝경제 이병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