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식 산업부장
윤은식 산업부장

중국 고사에 '강산이개, 본성난이'(江山易改,本性难移)라는 말이 있다. "강산은 변하기가 쉬워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는 뜻이다. 비슷한 우리 속담으로는 '늙어도 기생',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등이 있다. 한 번 몸에 밴 습관이나 버릇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한국 경제사에서도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 설립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전경련은 설립 초기부터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국가 경제 정책을 지원하고 대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은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지원하고, 정부는 대기업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70년대, 전경련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단체로 자리 잡는다.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과 특혜를 제공했고, 전경련은 이를 기반으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확립한다. 그 결과 대기업은 급속히 성장하고, 국내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대기업 간의 유착이 심화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고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이 발생한다. 대기업은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인들은 대기업의 자금 지원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해 서로 부당한 이익을 주고받는 '정경유착'의 시작이었다. 

정경유착의 심화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 따른 경제적 불균형과 정치인·대기업 간의 유착으로 부패와 비리가 만연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가 강화되자, 전경련과 정부 사이의 관계가 주목받게 된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구조 개혁과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전경련의 역할이 재조명받는다.

외환위기 이후 전경련은 구조적 개혁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내부 규정을 개정하고 윤리 강령을 제정하는 등의 개선 조치를 취했지만, 전경련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경련과 정부 간의 유착을 다시 한번 드러내며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 사건으로 전경련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주요 대기업들은 전경련에 등을 돌렸다.

전경련은 지난해 창립 이후 55년 만에 간판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애초 전경련이 설립할 당시 사용했던 명칭으로, 최초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삼성, SK, 현대, LG 등 4대 그룹도 복귀했고 이들 중 일부는 이미 회비를 납부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회비를 납부하면 한국경제인협회는 과거 전경련의 입지를 상당 부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4대 그룹은 형식적인 회원 자리만 유지했었다.

한국경제인협회로의 간판 변경은 단순히 이름 바꾸기가 아니다. 과거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정경유착의 본산' 전경련 부활에 불과할 따름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진정한 우리 경제 발전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재정상태의 투명한 공개, 윤리적이고 책임있는 경영을 통한 사회적책임 강화, 기업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로 기업과 관련한 불법적 행위를 철저히 관리하는 등 과거의 오류를 깊이 반성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눈에는 또 다른 이름의 구태로 남게 될 것이다.

굿모닝경제 윤은식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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