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원가의 40%가량 차지…2030년 100조원 규모로 성장
벨기에·일본 기업 장악 양극재 시장, 2010년대 후반 韓업체 약진
에코프로비엠·LG화학·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 하이니켈 생산 확대

급성장하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 발표와 맞물려 원활한 수급과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종업계 간 합종연횡도 가속화하고 있다. 굿모닝경제는 배터리셀, 소재, 원료 생산업체들이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는지 샅샅이 살피려 한다. [편집자주]

구광모 LG 회장이 지난달 17일 LG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해 양극재 생산의 핵심 공정 중 하나인 소성 공정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구광모 LG 회장이 지난달 17일 LG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해 양극재 생산의 핵심 공정 중 하나인 소성 공정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배터리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극재를 양산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 LG화학,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등 국내 주요 양극재 생산업체들은 배터리 제조사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국내·외로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다.

양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소재 중 하나다. 양극재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의 특성과 성능이 구분되고 가격과 성능, 안전성 등이 달라진다.

소재 업체들의 양극재 공장 증설은 IRA 세부 규정이 양극재를 국내에서 생산해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밝혀진 영향도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월31일 IRA 세부 지침을 발표했는데, 양극판과 음극판은 미국에서 제조해야 하지만 그 이전 단계인 양극재나 전구체는 국내에서 생산해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기에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극재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양극재 시장은 2021년 173억달러(약 22조5800억원)에서 2030년 783억달러(약 102조1800억원)로 5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삼원계 또는 사원계 배터리를 제조한다. 양극재 광물 조합에 따라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등으로 배터리 종류가 나뉜다. 특히 이 중 니켈 비중이 80%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하이니켈 양극재로 불리는데, 프리미엄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양극재로 통한다.

고성능 양극재가 비싸긴 하지만 K-배터리 제조사가 글로벌 판매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해 줘서다.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행거리가 다소 짧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반면 하이니켈 양극재는 LFP 배터리보다 주행거리가 길다. 이로 인해 글로벌 주요 전기차 기업들이 고성능 양극재를 선호하고 있다.

과거 양극재 시장은 벨기에 유미코어, 일본 니치아 등이 장악해왔다.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 역시 이들 제품을 주로 활용했다. 양극재 시장은 배터리셀 업체의 증설 속도와 맞물려 있어 단기간에 경쟁 구도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순위가 요동친 건 2010년대 후반부터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배터리 관련 투자가 급증했고, 산업 규모가 커졌다. 배터리 생산량이 늘면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제조 3사는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자국 협력사와 거래를 확대했다.

업계에선 현재 20% 중후반대에 머무는 양극재 국산화율이 2025년 전후로는 50% 이상으로 뛸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벤츠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2021년 삼원계 배터리 양극재 업체 중 에코프로비엠이 7만5000톤을 생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LG화학(6만1000톤), 니치아(4만8600톤), 유미코어(4만2000톤)가 뒤를 이었다. 삼성SDI(3만5000톤), 포스코퓨처엠(2만9700톤), 엘엔에프(2만5500톤)는 8~10위에 자리했다.

배터리 소재사들은 양극재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려 제조사 요구에 부합하는 양극재를 공급해오고 있다.

글로벌 삼원계 양극재 업체들 생산능력 현황 및 전망(중국 내 공장 제외). [자료=각사, 유진투자증권]
글로벌 삼원계 양극재 업체들 생산능력 현황 및 전망(중국 내 공장 제외). [자료=각사, 유진투자증권]

국내 양극재 1위 기업 에코프로비엠은 삼성SDI, SK온 등과 손잡고 생산능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특히 삼성SDI와는 합작사 ‘에코프로이엠’을 자회사로 운용 중이다. 경상북도 포항 양극재 공장 CAM6에서 연산 3만6000톤 규모 하이니켈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설립 중인 CAM7에서는 연간 5만4000톤의 양극재가 양산될 예정이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양극재 공장 CAM5N 생산량 3만톤이 온전히 반영되며, CAM7 공장 생산능력(5만4000톤) 전량 가동이 예상돼 전기차(EV) 부문 외형 성장 폭이 클 것”이라며 “내년에는 CAM8 3만6000톤, CAM9 5만4000톤 양산을 시작으로 EV 중심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코프로비엠은 SK온, 포드와 함께 북미 양극재 생산시설 구축을 위한 공동 투자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생산될 양극재는 SK온과 SK온-포드 합작사인 ‘블루오벌SK’에 공급된다. 에코프로이엠은 강력한 성능을 내는 하이니켈 양극재를 SK온에 공급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헝가리와 북미에서도 공장을 증설해 증가하는 양극재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2024년 연산 28만톤, 2026년 55만톤까지 양극재 생산량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화학 구미 양극재 공장 조감도. [사진=LG화학]
LG화학 구미 양극재 공장 조감도. [사진=LG화학]

LG화학은 국내에만 3곳(청주·익산·구미)의 양극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미국, 중국 등에도 양극재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 현지에는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30억달러(약 4조원) 이상을 투자해 공장을 짓고 있다. 2025년 말부터 양산에 들어가며, 2027년 연간 12만톤 규모의 NCMA 양극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양극재 공급망 확대에 신경 쓰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17일 충청북도 청주 양극재 공장을 찾아 생산라인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생산 현황과 글로벌 공급망 전략 등을 점검했다.

구 회장은 “양극재는 배터리 사업의 핵심 경쟁력 기반이자 또 다른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선도적 경쟁 우위를 지속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은 현재 청주공장을 포함한 글로벌 생산라인에서 연간 12만톤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완공 예정인 경북 구미 생산라인이 가동을 시작하면, 내년에는 연 18만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회사는 2027년까지 양극재 생산능력을 34만톤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업체의 양극재 수요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회사는 양극재를 포함한 전지소재 사업 매출을 지난해 약 5조원에서 2027년 약 20조원으로 4배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다.

LG화학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양극재를 생산해온 만큼, 그간 기술력을 꾸준히 쌓아 왔고, 품질도 뛰어나다”며 “양극재 관련 특허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하이니켈 양극재 특허의 경우, 세계 대부분 기업들이 쓰고 있는 기술에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28일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 포항 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김준형 포스코퓨처엠 사장, 정대헌 에너지소재사업부장, 손동기 양극소재실장, 김권 설비투자실장(왼쪽 4번째부터 왼쪽으로) 등 참석 관계자들이 시삽하고 있다. [사진=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28일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 포항 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김준형 포스코퓨처엠 사장, 정대헌 에너지소재사업부장, 손동기 양극소재실장, 김권 설비투자실장(왼쪽 4번째부터 왼쪽으로) 등 참석 관계자들이 시삽하고 있다. [사진=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28일 경북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서 첫 하이니켈 NCA 양극재 전용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1만6000㎡(약 4800평) 부지에 총 투자비 3920억원을 들여 건립하고 2025년부터 제품을 양산한다. 생산능력은 연 3만톤 규모다.

이 회사는 또 2025년까지 총 6148억원을 투자해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 4만6000톤 규모의 하이니켈 NCMA 양극재 공장을 추가 건설키로 했다. 올해 하반기에 착공해 2025년 준공한다.

하이니켈 NCMA 양극재는 니켈 비중을 80% 이상으로 높여 제조하며, 배터리 용량과 출력을 높이고 수명을 늘릴 수 있어 최근 전기차 고성능화 추세에 맞춰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포스코퓨처엠은 연산 9만톤의 광양공장을 비롯해 연산 1만톤 구미공장, 연산 5000톤 중국 저장성 절강포화 공장 등 총 10만5000톤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포스코퓨처엠의 양극재 생산능력은 2025년까지 총 27만1000톤으로 늘어나게 된다.

포스코퓨처엠은 해외에서도 제너럴모터스(GM)와 캐나다 퀘백에 연산 3만톤 규모의 양극재 합작공장을 짓고 있고, 화유코발트와 중국 저장성에 연산 3만톤 규모의 양극재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등 총 6만톤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와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는 올해부터 2029년까지 약 30조2595억원 규모의 하이니켈 NCM·NCMA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지난달 26일 체결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로부터도 약 22조원의 양극재를 수주한 바 있는 포스코퓨처엠은 이번 계약으로 LG에너지솔루션용 수주 규모가 52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앞서 지난 1월엔 삼성SDI에 2032년까지 하이니켈 NCA 양극재를 공급하는 40조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추가 투자를 추진해 2025년 34만5000톤, 2030년 61만톤 규모의 글로벌 양극재 생산체제 로드맵을 달성할 계획”이라며 “보급형 전기차용 제품인 LFP 양극재도 개발 중이어서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제품군은 더욱 다양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엘앤에프는 생산능력과 공급 물량을 확대해 현재 7.6% 수준인 양극재 시장점유율을 2026년까지 1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2026년까지 양극재 40만톤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핵심은 재료 혁신이다. 니켈 함량이 95% 이상인 NCMA 양극재 생산을 준비 중이고, 2025년엔 기존 다결정 양극재와 비교해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좋은 단결정 양극재와 LFP 양극재를 양산할 계획이다. LFMP(LFP 양극재에 망간을 추가한 제품)와 망간리치 등 차세대 양극재 양산 로드맵도 준비하고 있다.

수요 대응을 위해 생산능력도 확대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오는 7월 대구에 연 10만톤 규모 양극재 3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3공장에서는 니켈 함량을 90%대로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를 생산한다. 원재료 확보 안정화를 위해 중국 전구체 업체 CNGR, 리튬 생산 기업 시노리튬머티리얼즈 등과 전략적 협업 관계도 구축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3조8347억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공급망 확대를 꾀했다. 제품 공급 기간은 내년 초부터 2025년 말까지 2년간이다.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는 “단순한 선순환 구조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기술을 가진 파트너사들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친환경 배터리 소재 사업 구조와 공급 안정화를 구축하는 데 노력 중”이라며 “전·후방 사업의 혁신적 사업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엘앤에프만의 사업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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