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리스크 취약한 한국, 중국·반도체 편중 수출에 발목
정부, 공급망 안정화에 1조 투입...투자유치 지원도 확대
"지리적·품목별 다변화로 공급망 복원력 강화해야"

계묘년 대한민국 경제는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누적, 한미 금리 역전 심화로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큰 상처를 남겼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굿모닝경제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과 외화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다시 활기를 찾아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지난 2월20일 수출 기업 현장 방문으로 세종시에 있는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비전세미콘을 찾아 윤통섭 대표로 부터 플라즈마 클리너 등 각종 장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중국 갈등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무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리스크에 취약한 우리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지역별·품목별 다변화,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하면서 중국에 쏠린 공급망을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등 전략 국가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대중국 교역 비중 상승세…중간재 수입의존도 높아

지난달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년도 경제 현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제와 산업의 회복을 위한 정책들을 시행하는 한편, 여러 수입 규제 제도를 도입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에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감소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중국 내 봉쇄 조치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물류 차질을 초래했고, 우리나라의 산업 활동도 제약시켰다.

주요 제조·수출국들의 대중 중간재 수입 의존도(2021년 기준 총수입 대비 비중). [자료=ADB-MRIO]
주요 제조·수출국들의 대중 중간재 수입 의존도(2021년 기준 총수입 대비 비중). [자료=ADB-MRIO]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공급망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주요 원자재와 중간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

2021년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69.6% 수준이고, 전 세계 수출입에서 중간재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66.5%, 수입 47.1%를 기록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대(對)중 중간재 수입 의존도는 23%로, 주요국 중에서 대만에 이어 두 번째 수준이며 특히 제조업 생산에서 활용 범위가 넓은 화공품의 대중 수입 비중은 여타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역액 중 상위 5개국의 비중 추이. [자료=한국무역협회]
우리나라 교역액 중 상위 5개국의 비중 추이. [자료=한국무역협회]

2022년 대중국 교역은 전체 교역에서 21.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0% 초반대인 미국, 5% 남짓인 베트남, 홍콩, 일본을 크게 앞지른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무역 비중은 2000년 9.4%에서 2022년 21.9%로 늘었으나, 중국의 대한국 무역 비중은 같은 기간 7.3%에서 5.8%로 줄었다.

◇ 반도체 대체할 수출 포트폴리오 개발 시급

수출 상품에 대해서도 반도체 수출이 줄면 이를 상쇄시킬 대체 포트폴리오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반도체는 한국 산업의 ‘제1 수출 주력 품목’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은 물론, 소재·부품·장비 등 다양한 중소기업이 반도체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반도체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글로벌 반도체 ‘다운 사이클’ 충격파는 국내 기업에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기준 전체 수출액(501억달러) 대비 반도체 수출액(59억6000만달러) 비중은 11.9%다.

당장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락폭도 작년 10월 17.4%, 11월 29.9%, 12월 29.1%, 올 1월 44.5%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반도체 산업의 국내 경제 기여와 미래 발전 전략’에 따르면 2010~2022년 중 국내 경제성장률(평균 3.0%) 중 반도체 수출의 기여도는 0.6%포인트다. 반도체 수출을 제외하면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2.4%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또 반도체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64%포인트, 20% 감소하면 1.27%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10.9%에서 지난해 18.9%로 급등했다.

이런 구조는 한국 경제에 ‘독’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반도체 경기가 ‘상승 사이클’을 유지해 국산 반도체 수출량이 늘어나면 한국 경제가 살아나고, 반대로 사이클이 하강 곡선을 그리면 수출량 감소로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반도체에 쏠린 수출 전략이 국가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셈이다.

2022년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의 국별 비중. 중국은 홍콩을 포함한 수치. [자료=관세청]
2022년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의 국별 비중. 중국은 홍콩을 포함한 수치. [자료=관세청]

◇ 공급망 안정화에 1조 투입하는 정부

정부는 올해 공급망 안정화에 1조원 규모의 주요 재정 사업을 추진한다.

먼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주요국의 공급망 정책 ▲공급망 대응 시나리오 구축 ▲대체 수입선 발굴 및 현장 검증 등에 신규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 안정 종합 지원에는 16억원이 투입됐다.

공급망 확보를 위한 투자 유치 지원도 강화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지가 부담 완화를 위해 부지 매입 이후 임대 지원,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건물 임대료 지원,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투자 보조, 국내 복귀 기업 지원,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비 등을 지원한다.

작년 1475억원 규모였던 투자 유치 기반 조성 사업 예산은 올해 1569억원으로 늘었다.

석유 위기 대응 능력 제고 및 국내 석유 수급 안정을 위한 비축유 구입, 비축기지 건설 및 유지 보수를 지원하기 위한 재정 사업도 진행된다. 올해 673억원이 석유 비축 사업 출자에 투자되는데, 이는 지난해 282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기차,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원료인 희소금속 비축을 위한 핵심 광종 구매 및 비축 기지 확보 마련에는 372억원이 투자되고,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해외 유전·광물자원 개발 기업을 대상으로 30% 이내에서 융자 지원을 시행한다. 해외 자원 개발 특별 융자 사업에는 1754억원이 투입됐다.

무역보험에 가입된 수출입 계약건에 대해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 손실을 보상하는 보험금 지급 사업에는 6503억원을 투자한다.

◇ 전문가 "무역·기술 분절화, 장단점 있어…지역·품목별 다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중국 시장과 반도체에 쏠린 우리 수출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신(新)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에서 새로운 공급망 구축 및 포트폴리오 다변화 행보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싱크탱크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대체하는 시장을 발굴하기보다는 중국 외 추가 수출 시장을 발굴하는, ‘차이나 플러스’ 혹은 ‘차이나 앤드’ 차원의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GI는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정부가 첨단 IT 부문의 공적개발 원조를 늘리면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높여 신시장 진출을 지원할 것을 제시했다.

또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양국 사이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통상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GI는 통상 외교 정책 수립 시 한국 기업의 니즈를 적극 수용하고, 정부의 통상 정책 방향을 기업과 공유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상시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최근 무역·기술 분절화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의 경우 분절화에 따른 기술 제휴, 시장 진출 기회 등 긍정적 측면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악화, 고용 위축 가능성 등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있다”면서도 “지역별·품목별 다변화,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리스크 현실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는 거시경제와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각과 대응을 요구한다”며 “거시적으로 팬데믹 이전과 달리 공급능력 제약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면서 물가와 경기 간 상충관계(trade-off)가 확대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공급망 재편이 성장 잠재력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또 “산업 측면에서는 그간 중국 특수로 인해 지연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한편, 지리적·품목별 다변화 등을 통해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분절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적 요인이 맞물려 있는 만큼, 민·관이 협력해서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기술·기후변화 대응 등 글로벌 논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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