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째 이어진 무역적자....누적 611억달러 넘어
한은 금리동결 미국과 금리차 22년만 최대...외인 이탈
규제막혀 기업 해외 현금 100조 쌓고도 돈 빌려 투자
일부선 정부 고환율과 저금리 정책 전환해야 목소리

계묘년 대한민국 경제는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누적, 한미 금리 역전 심화로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큰 상처를 남겼던 1997년 ‘국제구제금융{IMF}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굿모닝경제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과 외화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다시 활기를 찾아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반면 수입은 늘어나 무역적자 행진이 1년째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반면 수입은 늘어나 무역적자 행진이 1년째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삼성전자는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한다고 공시했다. 시장은 삼성전자의 결정을 두고 위기 상황에도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물론 삼성전자의 투자 의지는 확고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금부자'인 삼성전자가 연 4.60%의 이자를 물면서까지 거액을 차입한 것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불해야 하는 이자만 2년반 동안 2조3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145조6519억원이다. 다만 자산의 대부분인 100조원 이상이 해외법인 곳간에 쌓여있다.

투자를 위해 해외자산을 들어오면 되지만 부담이 너무 크다. 환 리스크와 세금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각국 외환당국도 의식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세금을 지목한다. 해외법인의 자산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현지에서 세금을 낸 뒤 국내에서 또 한번 세금을 내는 '이중과세'로 인한 부담이 차입금 이자를 내는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해외 자금 '이중과세'로 국내 환류 부담...기업 '돈맥경화' 우려도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은 물론 SK, 현대차, LG 등 글로벌 비즈니스로 외화벌이에 나선 기업의 공통 고충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해외에서 수조원을 벌고도 이를 들여오지 못해 본사는 '돈맥경화'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보유한 해외보유금은 902억달러(약 112조)다. 100조원이 넘는 현금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 때문에 일찌감치 미국과 일본은 해외자금의 유입을 위해 제도를 개선했다. 일본은 2009년 해외 자산 과세방식을 익불금산입으로 전환해 해외유보금의 환류비율이 2010년에는 95.4%로 높아졌다. 미국도 과세방식을 바꿔 해외유보금의 약 77%가 돌아왔다.

최근 우리 정부도 수출과 외환 문제가 심각해지자 규제를 완화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해외자회사 배당금에 대한 과세방식을 익금불산입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혁신도 ‘기업 봐주기’ 논란으로 충분한 수준의 완화가 이뤄지지 못해 기업들의 한숨은 여전하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1일 서울 명동 환전소 앞에서 이용객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서울 명동 환전소 앞에서 이용객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쌓여가는 무역적자, 힌미 금리격차로 외화 유출 우려 확산

이 문제는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의 국내 유입에 대해 '이중과세'를 이어간다면 기업은 물론 국가 전체의 '외화경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의 IMF 외환위기'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우리 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가 겹치고, 한미 금리차로 외화 유출의 위험성이 IMF 외환위기만큼 커졌다.

수출은 5개월째 뒷걸음질쳤고, 무역수지는 1년째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입가격 증가와 중국 수출액이 감소한 영향이다.

1년 간 쌓인 무역적자만 611억달러를 넘는다. 이는 외화 유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러-우 전쟁과 미-중 갈등, 물가 상승에 따른 시장 위축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금리차로 인한 외국인 자금 이탈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50%, 미국은 4.50~4.75%다. 한미 금리차는 최대 1.25%로 22년 만에 최대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한미 금리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3월 미국 연준이 다시 한번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에 투자한 외국 자본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밀물처럼 빠져 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달 23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오름세로 돌아선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7일 1320원선을 넘었다. 작년 12월7일 1321.7원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환율은 3월 들어서도 13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외화도 빠져 나가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 직후부터 외국인의 3거래일 누적 순매도 규모가 9139억원에 달한다. 채권 시장에서도 외국인은 지난달 2405억원을 팔았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으로 환율 불안과 외화 유출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내수도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5일 빈 상점가가 늘어선 명동 거리를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 [사진=연합뉴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내수도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5일 빈 상점가가 늘어선 명동 거리를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 [사진=연합뉴스]

◇탈세계화 가속...수출전략 재정립, 외화 확충 방안 시급

우리나라의 올 1월 말 외환보유고는 4299억달러로 2021년 말 4631억달러에 비해 332억달러 감소했다. 지난해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줄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라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에 당장 문제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일시적이지 않아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수출을 이끌던 반도체와 중국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단기간에 개선될 것이라는 징후가 보이지 않아서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우 전쟁과 미-중 갈등 등으로 탈세계화와 블록화로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유리했던 수출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이같은 세계 경제 질서의 급변으로 '외환 안정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2의 IMF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외환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회복이 급선무로 변화한 국제 경제 질서에 맞는 지역별, 산업별 특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기업들이 해외에 벌어들인 100조원 이상의 외화를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중과세' 문제 등 외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도 개선과 기업 지원 정책을 통해 금융산업 리스크 대응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 연구위원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 채권시장, 단기자금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자금 운용과 조달 과정에서 손실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라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외환리스크에 취약한 기업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급격한 물가변동에 대비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환율과 금리 정책 근본적인 전환 목소리도

우리 정부의 환율과 금리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경제파국으로 치닫는 금융위기'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된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이 대표적이다. 최 소장은 1997년 IMF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 소장은 수출에 유리하다는 논리로 지속되는 고환율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환율 시대에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된 반면, 저환율 시대에는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아지면서 수출이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저환율은 외국인 투자금이 유입시키고 기업의 구매력을 늘려 경기 상승과 기업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만, 고환율은 외국인 자금의 유출을 가속화하고 국내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 소장은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국내자금의 해외유출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높이는 정책을 써야한다고 제시했다.

최 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경제병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 경제는 치료나 수술 없이는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라며 “치료에는 불가피한 고통이 수반되는데 이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는 다른 방법으로 보완해야 한다. 향후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미국보다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굿모닝경제 방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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