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무역수지가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적자 규모가 250억달러를 넘었다. 이는 1956년 이래 66년 만의 최대액이다. 특히 우리 수출의 25% 이상을 차지하던 대중국 무역수지가 30년만에 처음으로 네달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그동안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한 것은 1371만 달러를 기록한 1994년 8월 단 한 차례뿐이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첫째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줄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국 경제의 저성장을 들 수 있다. 셋째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정보통신 제품의 수요 위축이다. 넷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이로 인한 공급망 붕괴를 들 수 있다. 다섯째는 배터리·반도체 등 중간재 무역수지 악화와 디스플레이 생산 감소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했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들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우리의 대중적자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봉쇄를 강화하고 있으며 동맹국들에게 이에 동조하기를 반강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에게도 마찬가지 요구를 하고 있다. 따라서 EU의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 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21년 2월 18일 EU 집행위원회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을 목표로 하는 신통상정책을 발표했다. 집행위원회가 신통상정책을 발표한 배경에는 2020년대를 마무리하며, 향후 중기적 통상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최근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세계시장의 불안전성 및 COVID-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가장 크다. EU 내부적으로는 소득 불평등 악화, 보호무역주의, 브렉시트 등에 다른 불확실성을 새로운 통상전략을 통해 타개하고 미래에 대응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EU는 역내 단일시장의 지역주의와 역외 세계화 다자주의 전략을 통해 통상정책을 구현해 왔다. 1999년 통상담당 집행위원이었던 파스칼 라미(Pascal Lamy)가 대외통상 영역에서 ‘관리된 세계화(managed globalization in trade)라는 개념을 언급한 이후 집행위원회는 2000년대 들어 총 4번의 신통상정책을 발표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EU의 신통상정책은 2021년 다자주의를 확대하는 가운데 EU 회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 통상정책이다.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이란 자유무역 기조는 유지, EU의 이해관계는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신통상전략은 EU 회원국 기업의 이익 보호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로 인한 국제 안보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EU는 ‘전략적 자율성’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고 전략적 자율성은 주권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전략적 자율성은 안보방위 영역을 넘어서 기술, 환경, 무역, 금융, 거버넌스 체제, 국제협력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EU는 대미관계에서 전면적인 대중 대결 구도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첨단기술과 무역 분야에서 미국과 ‘가치동맹’과 ‘기술동맹’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미·EU 무역기술위원회(TTC) 발족이다.  미·EU 무역기술위원회는 무엇보다 중국이 미래 첨단기술을 주도하여 기술 패권을 차지할 위협에 대응하여 미국과 EU가 국제 기술표준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미·EU 무역기술위원회는 단순히 기술 패권의 주도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의 첨단 산업기술이 어떤 가치에 기반해야 하느냐’는 가치와 규범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EU는 미래 산업에 중요한 마이크로칩, 반도체, 희토류, 클라우드 컴퓨터, 정보통신기술 등에서 디지털 주권과 기술주권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EU는 원자재법(RMA) 제정, 단일시장 긴급조치, 역외보조금, CBAM, 공급망실사제도, 통상감찰관제도 등을 강화하고 있다. EU의 ‘디지털 주권’, ‘기술 주권’ 강화를 위한 정책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다. 우리도 미국과 중국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다양한 행위영역에서 수준을 달리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구상하면서, 파트너에 대해 열린 연계관계 속에서 자율성을 추구하는 구상을 마련해야만 무역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EU정책연구소 원장이며, (현)한국유럽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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