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들, 수평적 문화 조성 위해 직급 없애고 CEO와 대면 소통 늘려
자율좌석제, 뷔페 제공, 고급의자 선물 등 파격적 복지로 젊은 직원 마음 움직여

대한민국이 진화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생존의 시대'에서 1960년대 이후 이어진 '산업의 시대', 2000년 이후 지속중인 '정보의 시대'를 넘어서 '가치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가치의 시대 중심에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있다. MZ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기업의 중요한 계층으로 성장했다.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또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치'와 '공정'을 앞세운 MZ세대와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이끈 기성세대의 '하모니'를 통해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3월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SK텔레콤 AI 관련 구성원들과 AI 사업을 중심으로 한 회사 비전과 개선 과정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했다. [사진=SK텔레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3월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SK텔레콤 AI 관련 구성원들과 AI 사업을 중심으로 한 회사 비전과 개선 과정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했다. [사진=SK텔레콤]

기업들이 ‘MZ세대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MZ세대에 몰두하는 것은 이들이 회사의 미래 성장 축으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수조원을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는 기업으로선 젊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공정’에 가치를 두고 개인의 성과로 평가받는 것을 선호하는 MZ세대에 맞춰가기 위해 기업도 변화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대기업의 주요 계열사들은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상호 간 호칭을 없애거나 사내 복지를 대폭 강화하는 등 MZ세대와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직함 대신 친근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한종희 삼성전자 DX(디바이스 경험) 부문 부회장, 경계현 DS(디바이스 솔루션) 삼성전자 사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등 주요 기업들의 총수, 최고경영자(CEO)들은 호칭을 파괴하고 친근한 이름으로 불러주길 원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월 SK텔레콤 인공지능(AI) 사업 구성원들과 만나 “토니(Tony)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토니는 최태원 회장의 영문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아이디 역시 ‘파파토니베어(papatonybear)’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본인을 ‘회장’ 직함보다는 ‘대표’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며 직원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도 타운홀 미팅 ‘DX Connect’에서 부회장, 대표이사, 부문장 등 직함 대신 자신의 이니셜인 ‘JH’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한 부회장은 “우리가 직책을 모두 빼고 ‘프로’ 또는 ‘님’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이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수평적 사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기에서 ‘썰톡(Thursday Talk)’을 시작해 큰 호응을 얻고 삼성전자에서도 ‘위톡’으로 임직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본인을 사장이라는 직함보다 이니셜인 ‘KH’로 불러줄 것을 제안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 사장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소통 문화가 직원들 사이에서도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도 올 초 조직문화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임직원들에게 “편하게 ‘권영수 님’으로 불러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임직원들 상호간에 직함을 없애거나 ‘님’, ‘프로’, ‘매니저’ 등으로 호칭을 통일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CJ, 한화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LIG넥스원 등이 호칭 통일에 앞장서고 있다. 카카오 등 다수 IT 기업들은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혔다.

조주완 LG전자 CEO 사장(왼쪽 2번째)을 포함한 경영진이 '디자인 크루'와 소통하며 젠지(Z세대)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전자]
조주완 LG전자 CEO 사장(왼쪽 2번째)을 포함한 경영진이 '디자인 크루'와 소통하며 젠지(Z세대)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전자]

◆ "우리 사장님의 MBTI는?"…임직원 간 스킨십 강화

MZ세대와의 소통 방식은 수평적 만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EO가 직원들과 직접 대면하며 MZ세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경영진의 생각도 직접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LG전자는 지난 5월 CEO, 임직원 간 소통 행사인 ‘리인벤트(재창조) 데이’를 열었다. 리인벤트 데이에서 조주완 LG전자 CEO 사장과 임직원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조직의 방향성과 실천 방안 등을 놓고 대화했다. 직원들은 조직의 미래 비전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안을 전달했다. 이후 부서별 자체 설문을 시행하고 새 조직문화 담당 인력을 채용하는 등 조직문화 혁신에 나섰다. LG전자는 MZ세대 구성원으로 이뤄진 협의체 ‘섀도 커미티(Shadow Committee)’를 운영 중이다.

조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은 또 지난달 서초R&D캠퍼스를 찾아 대학생들로 구성된 ‘디자인 크루’를 만났다. 경영진은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주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미래 콘셉트 제품을 논의했다. 이날 디자인 크루는 환경 문제에 대한 Z세대(1996~2005년생)의 높은 관심을 전달했다. 특히 기업들의 친환경 마케팅이 실제로는 친환경과 거리가 먼 ‘그린 워싱’ 사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MZ세대와 경영진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다수 운영 중이다. TV를 만드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2030세대의 생각과 경험을 사업부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재미보드’가 운영 중이다. 재미보드는 젠지(Z세대)·밀레니얼 보드의 줄임말이다. 회사 제품과 소비자 트렌드부터 SNS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까지 소재가 다양하다.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부문의 젠지 랩도 마찬자기다. 100여명의 MZ세대 임직원들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경영진에 직접 전달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소통의 무대를 길거리로 옮겼다. 김 부회장은 신입사원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플로깅’ 봉사활동을 실시하며 소통했다. 김 부회장은 신입사원들에게 입사 100일 기념떡을 나누며 축하를 전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해 MZ세대 직원들과 서로 멘토링을 해주는 ‘코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신 부회장은 사원·선임 등으로 구성된 MZ세대 직원 4명에게 멘토링을 받았다. 신 부회장은 ‘대기업 CEO’와 ‘정년보장 만년 과장’ 두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밸런스 게임을 직원들과 함께 하며 회사 업무와 조직문화에 대한 MZ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신조어를 배우는 등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를 배웠다.

LG에너지솔루션 CEO-직원 간 직접 소통 채널 '엔톡(EnTalk)' 화면.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CEO-직원 간 직접 소통 채널 '엔톡(EnTalk)' 화면.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은 권영수 부회장과 세계 2만4000여명의 직원들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온라인 소통 채널 ‘엔톡’을 운영 중이다. 기존 임직원들이 CEO에게 건의하는 ‘신문고’ 형태가 아닌 실제 CEO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대화 채널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직원 80% 이상이 MZ세대인 점을 반영해 엔톡이라는 명칭과 디자인 모두 직원 의견을 수렴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도 매주 목요일마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실시간 방송 ‘썰톡’을 지난해 12월 만들었다. 직원들이 채팅을 통해 질문을 하면 경영진들이 답을 하는 식이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도 소통에 힘쓰고 있다. 최 사장이 주최한 임직원 중식 간담회와 국내외 임직원 간담회만 약 30회에 달한다. 특히 온라인으로 진행한 타운홀 미팅 ‘오픈토크’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사용, 성과급 등 직원들의 까다로운 질문에도 성실히 답했고, ‘회사 생활 중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된 경험’, ‘성공 요인’ 등을 묻는 질문에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부문 중간지주사인 현대제뉴인은 ‘우사초(우리 사장님을 초대합니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우사초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 대표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다. 지난 5월 첫 식사가 진행된다는 공지가 사내메일을 통해 알려지자 3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현대제뉴인은 ‘우사초’가 직원들이 CEO와의 소통을 위해 자발적으로 신청한 자리인 만큼, 유연한 조직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역시 토크 콘서트, 타운홀 미팅 등 오프라인 소통을 강화함과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회사 SNS를 통해 저근속 사원들과 적극 소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 올해부터 26명의 커뮤니케이터를 선발, 사내 소통을 늘리고 변화 관리 활동을 적극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은 전체 구성원의 60%를 차지하는 MZ세대와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주요 임원진을 대상으로 성격유형검사(MBTI)를 실시했다. 다른 사람의 성격 유형을 궁금해하는 젊은 직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CJ대한통운은 MBTI 결과에 기반해 자신을 돌아보고 구성원들과 소통 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코칭북도 지급했다.

또 전 임직원들 대상으로 ‘사무실 내 없어져야 할 꼰대문화 톱9’을 선정하는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이외에도 기성세대 임직원들과 MZ세대 임직원들이 가면과 음성변조기로 정체를 가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심정을 밝히고 토론하는 ‘세대공감 토크쇼 대통썰전’ 사내 방송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SK이노베이션 계열 임직원들이 SK서린사옥의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계열 임직원들이 SK서린사옥의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 자율좌석제에 명품의자 지급까지…파격적인 사내 복지

SK, LG, 삼성전자 등은 유연하고 자율적인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자율좌석제를 운영하고 있다. 지정 좌석을 이용했던 임직원들은 매일 자신이 이용할 좌석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팀이 달라도 활발히 소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데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은 이미 복장 자율화를 실시하고 있다. 일부 그룹 계열사에선 여름철에 반바지까지 허용했다. 국내 기업들의 복장 자율화는 유연한 복장을 통해 획일적인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임직원들에게 조식 뷔페를 제공하고 명품 사무의자를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출근 시간 아침을 먹지 못한 직원들을 위해 지난해 11월 본사에 조식 뷔페를 마련했다. 육류, 샐러드, 토스트 등 호텔식으로 마련된 조식 뷔페의 가격은 2000원으로 책정됐다. 식사 시간과 무관하게 언제든 라면을 먹을 수 있는 라면 코너는 지난 3월에 시작됐다. 이 복지 정책은 그룹 임직원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파격적인 사내 복지를 도입했다. 회사는 지난 4월, 출범 10주년을 맞아 모든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의 사무실 의자 전체를 교체한다고 공지했다. 새로 도입한 의자의 가격은 개당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의자 교체에 사용한 금액은 6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또 지난 3월 전 직원에게 기본급 200% 수준의 특별 축하금을 지급했다. 최태원 회장은 “10년 전 불확실성을 딛고 세계 초우량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을 가능케 한 구성원 모두는 내 삶에 별과 같은 존재”라고 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SK하이닉스는 1주일 40시간을 기준으로 2주간 80시간 이상 근무한 직원 대상으로 월 1회 금요일에 휴무를 부여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2주간 정상적으로 근무하면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 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파격적인 복지에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